유마 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명한 재가 제자이자 부유한 후원자였습니다. 유마는 『청정한 명성』을 뜻합니다. 유마 거사는 종종 병을 방편으로 해서 문병 오는 사람들에게 영적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해탈의 길과 『공』의 본질 같은 주제에 통달했고 그 깊은 이해를 종종 나누었습니다. 그의 접근법은 재가자뿐 아니라 심지어 부처님 승단의 높은 보살들까지 일깨웠다고 합니다. 유마 거사는 전통적인 대승불교 경전에 포함된 『유마경』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2015년 8월 15일 프랑스에서 부처님의 많은 출가승을 능가하는 유마 거사의 지혜와 달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Master: 부처님 시대에 유마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들어봤나요? 유마 맞죠? 그는 재가자였어요. 부처님의 재가 제자였죠. 하지만 지혜가 아주 높고 정말 큰 성취를 이루어 모든 출가승이 어렵게 생각했어요. 존경하는 뜻에서죠. 유마는 언변이 출중하여 일부 승려는 맞설 수 없는 힘이 있었어요.
이제 『유마경의 9장에서 둘이 아닌 법문(입불이법문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여기서 유마 거사가 법문에 들어가는 방법을 설명하라고 뛰어난 여러 보살에게 요청합니다.
“그때 유마거사가 여러 보살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 어찌하여 보살이 둘 아닌 법문(불이법문)에 들어가나이까. 각자 말씀해 보소서」
법자재 보살이 말했다. 「여러분, 나고 없어지는 것이 둘이라고 하나 법은 본래 나지도 않고 이제 없어질 일도 없나니 이 무생법인을 얻은 것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승밀 보살이 말했다. 「나와 내 것은 둘입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헛된 것이라면 내 것이라 할 것도 없게 됩니다. 결국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이법문에 드는 겁니다」
승봉 보살이 말했다. 「더럽다느니 깨끗하다 하는 것은 둘입니다. 더러운 것의 실체를 알게 되면 깨끗한 것에 대한 맹신도 없게 됩니다. 모든 맹신을 쳐부수는 데로 나아가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묘성 보살이 말했다. 「움직임과 고요히 생각함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움직임이 없으면 고요히 생각할 것도 없고 마음 쓸 일도 없으며 관심 가질 일도 없습니다. 결국 관심 가질 일이 없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덕입니다」
묘비 보살이 말했다. 「보살의 마음이니 성문의 마음이니 하는 게 둘입니다. 하지만 마음 역시 허깨비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면 정작 보살의 마음도 성문의 마음도 없습니다. 결국 마음의 모습에 차별이 없는 그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무순 보살이 말했다. 「취하는 것과 취하지 않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취하지 않음은 인식하지 않는다는 거고, 인식이 없으면 판단도 없고, 판단이 없으면 버릴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도 지음이 없고 작용시키지도 않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선안 보살이 말했다. 「일상이니 무상이니 하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판단을 중지하고 분별을 그치게 되면 정작 일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닙니다. 어떤 상도 평등하다고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불사 보살이 말했다. 「선과 악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고 무상의 실체를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자 보살이 말했다. 「잘못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금강석과 같은 지혜로 속박도 해탈도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자의 보살이 말했다. 「번뇌가 있다느니 번뇌가 없다느니 하는 것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평등성을 바탕으로 존재를 이해하게 되면 번뇌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관념도 없어지고 버릴 것도 없게 됩니다. 나아가 평등성마저도 정작 얻었다 할 것이 없으며 모든 관념의 얽매임을 벗어납니다. 이렇게 아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정해 보살이 말했다.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이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앎이 지극히 순수하여 일체의 헤아림을 벗어나며 지혜가 허공과 같아서 걸림이 없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나라연 보살이 말했다. 「세간이니 출세간이니 하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세간의 본성이 공하다면 굳이 그로부터 출세간으로 나올 것도 없고 그 안에 들어갈 것도 없으며 가지 않을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선의 보살이 말했다. 「윤회와 열반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윤회의 본질을 깨닫고 나면 이제는 윤회도 없고 열반에도 들지 않음을 아는 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현견 보살이 말했다. 「다함과 다함이 없음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함이란 철저히 다한다는 것이고 철저하게 다한다는 것은 절대 다할 것이 없는 것, 곧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함이 없는 것은 찰나적이며 찰나적인 것은 다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보밀 보살이 말했다. 「내가 있음과 내가 없음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둘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아는 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뇌천 보살이 말했다. 「앎과 어리석음은 둘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음과 앎의 본질은 같은데 어리석음이란 막연하고 헤아릴 수 없고 생각의 범위를 초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희견 보살이 말했습니다. 「색은 그 자체로 공입니다. 색이 멸하여 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색의 본성이 곧 공입니다. 마찬가지로 감각과 관념과 행동 의지와 의식과 공을 둘이라고 합니다. 의식은 그 자체로서 공일 뿐 의식이 멸하여 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의식의 본성이 곧 공입니다. 영적 인식으로 집착의 대상인 오온에 대해 이처럼 아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광당 보살이 말했다. 「지수화풍의 사계와 허공계를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계는 허공계를 본성으로 하며 과거, 현재, 미래 역시 모두 허공계를 본성으로 합니다. 이처럼 아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묘의 보살이 말했다. 「눈과 그 대상을 둘이라 합니다. 하지만 눈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 그 대상에 집착하는 일이 없고, 노여워하지 않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니 이를 「적정」이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을 각각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본질을 깨달으면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노여워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니 이를 「적정」이라 합니다. 이 적정에 있는 게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