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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9장 둘 아닌 법문(입불이법문품),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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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 거사는 전통적인 대승불교 경전에 포함된 『유마경』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유마경』은 세속적 또는 영적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내면의 진리를 강조합니다. 이 경전의 주요 주제는 대승 불교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인 『불이법문』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인식을 말합니다. 불이법문은 또한 신과 개별 영혼의 일체처럼 『일체성』을 뜻합니다.

“무진의 보살이 말했다. 「보시와 일체지에 대한 회향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시의 본질은 일체지이며 일체지의 본질은 곧 회향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 및 일체지에 대한 회향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체지는 지혜를 본질로 하고, 또한 회향은 일체지를 본질로 합니다. 이같이 이들이 모두 하나라는 도리를 깨닫는 그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심혜 보살이 말했다. 「공이니 무상이니 무원이니 하는 것을 둘이라고 합니다. 공은 아무런 상이 없고 상이 없는 건 바람도 없으며 바람이 없는 것에는 마음도 생각도 의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해탈문을 통해 모든 해탈문을 보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적근 보살이 말했다. 「부처와 법과 승가로 나누는 것이 둘이라고 합니다. 부처의 본성은 법이고 법의 본성은 승가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위이며 무위는 곧 허공입니다. 이같이 모든 존재를 허공으로 보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무애안 보살이 말했다. 「몸과 몸의 소멸을 둘이라고 합니다. 몸은 그 자체로서 몸의 소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개아라는 그릇된 관념으로 파악하거나 맹신하지 않게 되면 이것은 몸이다, 몸은 소멸하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단정도 없고 양자 간의 분별도 사라지고 망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몸은 소멸을 본성으로 한다는 도리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없음을 아는 게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상선 보살이 말했다. 「몸과 말과 생각 이 셋에 대한 규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애써 행하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애써 짓지 않으면 곧 말도 애써 짓지 않고 동시에 생각도 애써 짓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것에 애써 행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며 이같이 아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복전 보살이 말했다. 「공덕과 비공덕의 행위와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행위를 둘이라고 하며 반대로 공덕과 비공덕과 부동의 행위가 모두 없는 것을 불이라고 합니다. 공덕과 비공덕과 부동을 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이며 거기에는 공덕도 없고 비공덕도 없고 부동이나 행위도 없습니다. 이 셋 모두를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연화보살이 말했다. 「자아가 일어나면서 둘 사이에 대립이 생깁니다. 하지만 자아의 본질을 이해하면 대립은 없습니다. 둘 사이의 대립도 없이, 알려주는 주체도 없고 그 대상도 없음을 안다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덕장보살이 말했다. 「인식행위에 의해 둘 사이에 대립이 생깁니다. 인식이 없다면 대립도 없고, 그러기에 수용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 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월상보살이 말했다. 「밝음과 어둠을 둘이라고 하며, 밝음도 없고 어둠도 없는 것을 불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멸진정에 들어가게 되면 정작 밝음도 어둠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그 평등성을 깨닫는 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보인수보살이 말했다. 「열반을 좋아하고 윤회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둘이라고 하며, 반대로 열반도 좋아하지 않고 윤회 또한 싫어하지 않는 것을 불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속박이 있는 경우라면 해탈을 간절히 구하겠지만 속박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누가 굳이 해탈하고자 마음을 내겠습니까?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비구에게는 정작 기뻐할 것도 없고 싫어할 것도 없으니 이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주정왕보살이 말했다. 「바른길과 삿된 길을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길에 머문 사람은 삿되고 옮음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분별하지 않고 살면서 도나 도 아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이 두 가지를 떠나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낙실보살이 말했다. 「진실과 허위는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실에 도달한 자는 진실까지도 보지 않는데 허위를 보겠습니까? 왜냐하면 진실에 도달한 자는 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보며,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볼 대상이 없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는 이도 볼 대상도 없는 그것이 불이에 드는 것입니다」

말을 모두 마친 보살들이 이번에는 문수보살을 향해 물었다. 「문수보살이시여, 그대의 경우는 보살이 불이 법문으로 들어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수보살이 답했다. 「그대들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만 거기에는 아직도 둘이라는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일체의 법에 관하여 말할 수도 없고 설할 수도 없고 제시할 수도 없고 알게 할 수도 없으며, 일체의 질문과 대답을 떠나는 것이 둘 아닌 법문에 드는 길입니다」

이때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들 생각은 이러합니다만 거사께서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유마거사는 입을 다문 채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문수보살은 대뜸 유마거사를 칭송하기 시작하였다. 「정말로 훌륭하십니다. 이야말로 보살의 불이의 법문에 들어가는 도리이니 거기에는 실로 문자도 없고 말도 없으며 마음의 움직임도 없습니다」 이 같은 말을 듣고 5천 명의 보살들이 그 자리에서 불이 법문에 들어가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무생법인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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