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함마디 문서는 초기 기독교도와 그노시스파 필사본 모음으로 고문서로도 부르며,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 마을 인근에서 발견되었죠. 이 문서들은 약 2천 년을 거슬러 가는 고대 문헌입니다.
이 발견과 번역으로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와 이들 문서에서 강조하는 길인 그노스시파의 특징을 재평가했습니다. 그노시스파는 개개인 안에 신의 불꽃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소중한 나그함마디 필사본 소장품은 이집트 카이로의 콥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그함마디 문서』 삼부론에서 『조직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노시스파 용어로, 에온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신의 완전한 경지를 나타냅니다.
물질적 영역의 창조 안에서 신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지만 더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적 해방은 우리가 무형인 에온의 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육체적 존재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노시스파 가르침의 또 다른 개념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물질적 형태로 표현되는 보편적인 신의 원리를 상징합니다.
그노시스파 경전에서 로고스의 그러한 표현 중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조직화
『그의 기도와, 그로 인해 일어난 회심으로 인해,
어떤 자들은 멸망하나, 어떤 자들은 은혜를 입고,
또 어떤 자들은 분리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니라.
그는 나투신 분, 그에게 만유에 대한 권위를 주신 분의 권능을 사용하여,
먼저 불복종하는 자들에 대한 징벌을 준비했나니, 이는 그에게서 분리되려는 것이니라.
그는 아래에 있는 자라, 외부에 있는 만유의 조직을 준비하고
각자에게 정해진 장소를 주기까지 높은 것에게서 분리되느니라.
로고스가 총체들을 아름답게 했을 때, 그는 확고함의 원인이신 아버지처럼,
존재하게 된 자들의 근본원리이자, 원인이자, 지배자로서 먼저 자신을 확고히 했나니,
그 확고함은 아버지 이후에 존재한 최초의 것이었느니라.
그는 최초로 존재하는 형상들을 창조했나니,
그것들은 그가 감사와 찬양 속에서 낳은 것이니라.
그 후 그는 자신이 찬양 속에서 낳은 자들의 장소를 아름답게 했나니
그것은 「낙원」이요, 「즐거움」이요, 「양분으로 충만한 기쁨」이요,
「최초로 존재하는 기쁨」이라 불리느니라.
그리고 그는 플레로마 (신과 신성한 힘의 총체와 그 방사가 거하는 영적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선함의 형상을 보존했느니라. 그 후 그는 그 왕국을 형제애와 관용이라는 온갖 훌륭한 것으로 가득 찬 성읍처럼 아름답게 했느니라.
그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거룩한 영들과 강력한 권능들로 충만하나니 그들은 로고스가 낳고 권능 속에서 확고하게 한 자들이니라. 그리고 그는 그곳에 모인 교회의 장소를 아름답게 했나니, 그것(교회)은 에온들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형상을 지녔으며,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느니라.
이런 일을 한 후, 그는 소망으로부터 나오는 믿음과 순종의 장소를 아름답게 했나니, 이는 빛이 나타났을 때 로고스가 받은 것들이니라; 그 후 그는 기도와 간구인 그 특성의 장소를 아름답게 했나니, 이에 용서와 곧 나타나실 분에 관한 말씀이 뒤따라왔느니라.
모든 영적인 장소는 영적인 권능 속에 있느니라.
그 권능이 플레로마를 (신과 신성한 힘의 총체와 그 방사가 거하는 영적 우주)
로고스에서 분리시키는 형상 속에 있을 때, 그것들은 생각의 장소들에서 분리되었나니,
그 권능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 속에서 활동하면서
먼저 존재하신 분을 통해 존재하게 된 생각에 속하는 것들을 지배하는 동안 그러하니라,
그리고 권능은 그와 함께 있는 것들을 봄으로써 존재하게 된 것들과
생각에 속하는 것들이 섞이지 못하게 하느니라.
바깥에 있는 생각에 속하는 자들은 겸손하나니,
그들은 특히 자기들을 아름답게 하는 이름들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플레로마에 속한 것들의 형상을 보존하고 있느니라.
회심은 생각에 속하는 자들에 대해 겸손하며, 율법도 그들에 대해 겸손하나니, 그 심판의 (율법은) 정죄요, 분노니라.
그들 아래로 추락한 자들을 분리시키는 권능도 그들에 대해 겸손하나니 그는 그것들을 멀리 보내고, 그것들이 생각과 회심에 속한 자들 위로 퍼지지 못하도록 하며, 그는 두려움과 당황과 망각과 놀람과 무지 속에 있으며, 환상으로 인해 모방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 것들 속에 있느니라.
실로 비천한 자들도 고귀한 이름으로 불리느니라. 교만과 권력욕과 불복종과 거짓말의 생각을 가지고 그들에게서 나온 자들을 위한 지식은 없느니라.
그는 두 질서 각각에게 이름을 붙였느니라.
그는 생각에 속한 자들과 형상에 속한 자들은 「오른쪽에 있는 자들」과
「정신적인 자들」과 「불에 속한 자들」「중간에 있는 자들」로 불렀느니라.
교만한 생각에 속한 것들과 모방에 속한 것들은 「왼쪽에 있는 자들」
「물질적인 자들」 「어두운 자들」「마지막 것들」이라.
로고스는 형상들과 표상들과 모조품들을 각각 자신의 질서 속에 둔 후,
형상들의 에온이 그것과 싸우는 모든 자들에게서 벗어나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나니, 그것은 기쁨의 장소이니라.
그러나 생각에 속한 자들에게 그는 그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생각을 드러냈나니
그들의 조직과 거처를 위해 그들을 물질의 결합으로 이끌려는 것이요,
그들이 악에 이끌리는 것에서 벗어나 축소의 충동을 낳게 하려는 것이니,
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환경의 영광 속에서 기뻐하지 못하고,
해체되어 자신들이 겪는 병을 보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랑을 낳고,
그들에게서 저급함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분을 끊임없이 찾도록 하기 위함이었느니라.
또한 그는 모방에 속하는 것들 위에 아름답게 하는 말씀을 두었나니,
이는 그들을 형상 속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느니라.
그는 또한 그들 위에 심판의 법을 두었느니라.
나아가 그는 뿌리들이 그들의 권력욕 속에서 낳은 권능들을 그들 위에 두었느니라.
그는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로 임명했나니 이는 그들이 지배에 유용했으므로,
로고스가 그들과 조화를 이루기까지, 그들을 아름다운 말씀의 확고함에 의해서든지,
법의 위협에 의해서든지, 아니면 권력욕의 권능에 의해서든지,
그들을 악으로 몰아넣은 자들로부터 질서를 유지하게 하려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