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천국과 지옥의 모든 명예를 걸고 나는 당신이 이생에 해탈할 것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되지 않더라도 해탈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적어도 해탈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스승님, 제가 경전을 읽었을 때 부처님은 『한 생에 즉각 깨닫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되기 위해 사람은 세세생생 영적 수행을 해야 하고 무량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모순을 설명해주십시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재미로 물어보자면 당신이 세세생생 영적 수행을 하지 않은 걸 어떻게 알죠? 그러니 내가 반문하면 답을 알게 될 거예요. 그게 첫째이고 당신은 이미 세세생생 영적 수행을 했으며 이번이 마지막 생애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을 만나 한 생에 즉각 깨달음의 법문을 수행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유 중 하나죠. 재미 삼아 말하는 겁니다. 증명할 필요는 없지요.
그것이 첫째이고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이 물었으니 재미 삼아 생각해보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것의 옳고 그름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두 번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것은 추론이 아니라 내 이해에 근거한 것이죠. 부처님은 두 종류가 있어요. 압니까? 하나는 연각불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한 부처님입니다.
연각불은 다음과 같아요. 연각불은 영적 수행을 해서 홀로 도를 이룹니다. 아니면 부처님을 만나거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홀로 수행하여 도를 이룹니다. 그는 누구와도 인연이 없기에 아무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한 부처님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죠. 그는 세세생생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을 돌보고 위로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완전한 부처님을 만나면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고 말씀을 듣고, 어디든지 가는 데마다 따라갑니다. 그는 보살도를 수행하여 중생의 영생을 돕습니다. 이런 두 종류의 부처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부처님이 되어 중생을 구할 수 있으면 세세생생 자신이 이미 보살도를 수행한 것을 알게 되죠. 여러분은 희생하고 많은 사람을 도와서 그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부처님은 인연 있는 사람들만 구했다고 합니다. 영적 수행을 해서 부처님이 되지만 아무도 구원할 수 없고 아무도 당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이 연각불인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단지 이생에 부처님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힘으로 일생에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스스로 해탈할 수 있다면 이미 좋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해탈한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이고 부처님과 보살이 축하할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할 필요 없이 자신만을 구하세요. 여러분은 한 생을 수행해서 확실히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 관음법문을 수행한다면 천국과 지옥의 모든 명예를 걸고 나는 당신이 이생에 해탈할 것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되지 않더라도 해탈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적어도 해탈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스승님, 부처님은 불경에서 부처님께 절하면 자신과 좋은 인연을 맺고 공덕을 쌓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스승님은 부처님께 절하는 것이 공덕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이 하신 말씀과 반대가 아닌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살아있는 부처님에게 절을 할 때는 공덕이 있지만 나무 불상에 절하면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부처님께 절한다고 할 때 절에 있는 나무 불상이나 청동 불상에 절하는 것을 뜻하며 그건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절할 때 공덕이 있는 것은 부처님이 아직 살아계실 때입니다. 살아계신 부처님께 절하면 공덕을 얻지만 그 공덕은 적습니다.
부처님께 절할 때 마음속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신구의 모두가 절해야 하며 살아 있는 부처님께 당신을 축복하고 해탈해 주길 기도해야 큰 공덕이 쌓입니다. 그러나 단지 장사가 잘되고 성공하길 원해서 절한다면 공덕이 작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부처님에게 절하면 소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그러나 음식을 충분히 먹거나 부자가 되는 등 사소한 것을 원하면 당신을 종종 그것들에 더 묶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으로 부처님께 절하여 자신을 묶지 마세요.
이야기를 해 줄게요. 내가 비입문자에게 보시를 받지 않는 이유를 아나요? 그들이 작은 공덕을 쌓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보통 입문하지 않은 외부인은 내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절하고 공양하면 돈과 명예와 이익을 얻고 천국과 땅에서 복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그게 전부죠. 그들은 천국과 인간 세상의 것을 원하지만 해탈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이 개념에 빠지게 않게 하려고 보시를 받지 않습니다.
내가 자비심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난 자비심이 더 많아요. 그들이 해탈의 개념을 갖길 원하니까요. 그들은 약간 고통스럽지만 나중에 깨어나고 배울 스승을 찾으며 영원히 해탈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돈을 좀 받는다면 나중에 부자가 되거나 다음 생에 관료가 되고 살해될 겁니다. 사람들에게 살해되고 돈과 물질에 유혹을 받아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은 진정한 도움도 진정한 자비도 아닙니다.
측천무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를 아나요? 측천무후는 한 전생에서 살아 계신 부처님께 모래 한 줌을 바쳤습니다. 그가 부처님이라고 들었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한 줌의 모래를 드렸습니다. 그녀는 어린아이였고 부처님에게 한 줌의 모래를 바쳤는데 후에 그녀는 중국 모든 백성의 황후가 되었지요. 그러나 무엇을 얻었나요? 평생 감정적으로 정치적으로 고통 받고 춥고 텅 빈 궁전에서 비극적으로 죽었지요. 그녀가 무엇을 얻었죠? 그래서 나는 누구의 보시도 받지 않아요. 나는 천지의 그런 작은 공덕을 주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고통받고 이해하고 맛보고 나서 깨어난 후에 수행해서 세세생생 행복하게 합니다.
(무상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삼촌. (전, 내면의 비전을 봤어요). 어떤 종류의 눈이죠? (눈이요) 눈이 어떻다고요? (내면의 비전을 봤습니다) 내면의 비전, 네, (귀로 내적 천국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 축하해요. (그러나 명확하지 않습니다) 네. (스승님, 제가 전생을 분명히 보고 기억하는 법을 알려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왜 전생을 보고 싶나요? (전생을 보고 기억할 수 있을 때 해탈할 수 있습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전생을 보고 나면 (해탈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전생을 볼 수 있다면 『숙명통』이라는 신통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숙명통』은 6가지 신통 중 하나입니다. (네) 『숙명통』은 6가지 신통 중 하나로 (네) 자신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네) 이 몸이 죽으면 신통이 더는 없고 여전히 해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증거로 목건련은 6가지 신통이 있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항상 그에게 신통력을 쓰지 말라고 경고했죠. (네) 신통을 얻을 순 있지만 그걸로 해탈할 수는 없죠. 결코 가려지지 않고 과거나 미래가 없는 자신의 찬란한 불성을 알 때 당신은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능엄경에는 『반뚜』와 『환뚜』에 대해 말합니다. 『반뚜』는 수행하기 위해 가르침을 듣고 숙고하는 것이며 『환뚜』는 오랫동안 열심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시고 제가 누군지 말해주시겠어요?) 왜 알고 싶나요? (해탈하기 위해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영적 수행을 해야 하며 그게 내가 당신을 아는 것보다 낫죠. 무엇 때문에요? (네) 세상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어요. 왜 당신 한 사람만을 알아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제가 누군지 말씀해주세요) 당신은 당신입니다. (네, 그러나 제가 이룬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지혜안이 열렸으니 명확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드리며 스승님을 매우 존경하고 무례를 범하려는 게 아닙니다) 존경심이 있는 걸 알지만 개념이 틀렸어요. (올바른 개념은 무언가요?) 당신은 자신의 명료한 지혜, 위대한 자아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 측면만을 찾길 원하니까요. 그것은 낭비입니다. (네, 그러면 알려주십시오) 관음법문을 수행하세요. 그러면 자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런 걸 보여주려고 여기 있지 않아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지금 관음법문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제게 알려주셔야 하나요?) 완전히 알려주려면 두세 시간이 필요해요. (네, 부처님 감사합니다) 네, 당신이 원하면요. (그때 뵐 수 있나요?) 나중에요. (네, 감사합니다) 자리로 모셔다 드리세요.
(사랑하는 스승님, 자살한 사람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 그를 사랑하는 관음법문 수행자가 자살한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까?) 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지구에 있는 긴급구조대와 유사한 호법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살하고 갑자기 죽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구조합니다. 그들은 부서진 영(의식)의 조각을 되살려서 다시 붙여줄 것입니다. 이 지구에서 얼굴이 찢긴 부상자를 구출하여 다시 얼굴을 붙일 수 있는 구조대와 비슷합니다. 우리 몸엔 여러 층이 있죠. 아스트랄체라는 층이 있는데 때로 그것이 부서지기도 해요.
아스트랄체를 구출하는 일을 담당하는 호법이 자살한 사람을 다시 데려와서 그들을 다시 온전하게 할 것입니다. 그게 그들의 의무입니다. 자살한 사람은 구조되지만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자살했을 때 영혼이 매우 낮고 극도로 비참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수준이 너무 낮고 진동이 너무 낮아요. 우리가 이제 그 진동을 인간 진동 수준, 정상 수준으로 올리고 싶다면 다소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들의 망가진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빛, 많은 기도, 많은 사랑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고 그 영혼이 전처럼 영리하거나 평범한 사람이 되려면 두세 번의 생을 인간으로 태어나야 해요.
하지만 자살한 사람은 종종 매우 어둡고 힘든 세상에서 길을 잃고 약해진 마음에 괴로워해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라는 걸 압니까? 『슬플 때는 어떤 풍경도 즐겁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마음이 아프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집, 처자식과 친구들은 똑같은데 그 모든 걸 즐길 정신이 없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지옥입니다. 그보다 더 깊은 다른 지옥이 있어요. 그건 영혼이 더 아래로 떨어진 걸 뜻하죠.
자살한 사람은 종종 어둡고 우울하며 희망도 없고 미래의 빛도 없는 영역에서 길을 잃는데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많은 경우에 그들은 떨어진 영역에서 2번, 3번, 4번의 생 동안 오백 년, 천 년 동안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충분히 고통받고 더는 참을 수 없다면 스스로 깨어납니다. 아니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기도할 때, 『제 아들이 죽었어요』 이렇게 말하고 관음법문 입문자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면 호법들이 가서 자살한 영을 찾아 그들을 중환자실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분간 중환자실에 머물며 치유될 때까지 빛으로 양육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죠. 자살한 영이 자신을 위해 기도할 사람이 없다면 오랫동안 낮은 영역에 머물 겁니다. 수천 년이 지나서야 그들은 그것에 너무 질려서 갑자기 깨어납니다. 영원히 지속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