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세스 벤 마이몬 랍비의 저서 『혼란스러운 이를 위한 안내서』3부 12장을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이 유대인 철학자의 매우 계몽적인 지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절한 것을 봅니다.
세 번째 악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에게 야기하는 악을 말합니다. 솔로몬은 이런 악에 관해 「인간은 어리석어 자신의 길을 망친다」고 말합니다. 그는 다음 구절에서 또 이런 악은 자신이 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내 깨달은 바가 이것이라, 하나님이 인간을 올바르게 지으셨으나 그들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그리고 이런 많은 꾀는 인간에게 악을 가져옵니다. 욥기 5장 6절도 같은 주제를 언급합니다.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이 말들은 바로 자신이 이런 악을 만든 자라는 설명이 뒤따르며 「사람은 고난을 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악은 음식, 술, 사랑에 대한 과도한 욕망에서 생기며, 이런 것을 과도하고 부적절하게 탐닉하거나 또 나쁜 음식을 먹는 인간의 악덕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행위는 몸과 영혼에 모두 질병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이런 악의 결과로 인한 육체의 고통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혼의 고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혼이 육체에 거하는 힘인 한, 이런 영혼의 악은 필연적으로 육신의 변화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특성은 육신의 상태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둘째로 영혼이 불필요한 것에 익숙해지면 개인의 생존이나 종의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원하는 강한 습관을 갖게 됩니다.
이 욕망은 한계가 없는 반면 필요한 것은 몇 개 없으며, 일정한 한계 안에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은 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은그릇을 갖고 싶지만 금그릇이 여전히 더 좋습니다. 다른 사람은 심지어 사파이어 그릇을 갖거나 어쩌면 에메랄드나 루비, 또는 생각나는 다른 재료로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생각이 무지한 사람은 끊임없이 고통과 어려움에 부닥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소유한 만큼 많은 불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택한 행위의 결과에 부닥치면 하나님의 결정과 판단에 대해 불평합니다. 그들은 시간을 탓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큰 부를 얻을 수 없는 그 변화에 정의가 없다고 의심합니다.
무지한 자의 오류는 신의 힘이 불충분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신께서 그들이 상상하는 특성을 이 우주에 주셨기에 큰 악들이 생겼으며, 모든 악인에게 그들이 원하는 악을 얻도록 돕지 않고, 그들 욕망의 목표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그것들이 정말 한계가 없더라도요.
그러나 고결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보고 이해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모든 길은 그분의 언약과 예증을 지키기 위한 자비와 진리이니라」 우주의 본질과 율법의 계명을 지키고 자신의 목적을 알고 있는 자는 만물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진리를 명확히 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창조주께서 인간의 목표로 정한 지식을 추구합니다. 육체의 요구에 묶인 그들은 또한 육신의 보존에 필요한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찾는데, 이것은 매우 조금입니다. 그들은 불필요한 것은 찾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것에만 만족하는 한 아주 약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은 불필요한 것에 대한 욕망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필요한 것을 찾을 때 꼭 필요한 것을 찾는 일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불필요한 것을 더 원할수록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의 힘과 재산을 불필요한 일에 쓴다면 필수품을 얻을 때 부족하게 됩니다.
자연이 이 명제의 정확성을 어찌 증명하는지 보세요. 생명체에 더 많이 필요한 것일수록 그것은 더 찾기 쉽고 더 저렴합니다. 필요성이 적은 것은 더 희귀하고 소중합니다. 가령 인간에게 공기, 물, 음식은 필수적입니다. 공기가 가장 필요한데 인간은 공기가 없으면 금방 죽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물은 없어도 하루 이틀은 살 수 있지요.
그래서 공기가 분명히 물보다 찾기가 더 쉽고 저렴합니다. 물은 음식보다 더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이 있다면 음식 없이 4, 5일은 지낼 수 있습니다. 물은 또한 모든 나라에서 음식보다 더 많이 있고 또한 더 쌉니다. 다른 음식도 같은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정 장소에서 더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있고 필요성이 적은 것보다 더 저렴합니다.
지식인이라면 사향, 호박, 루비, 에메랄드가 약용 외에는 인간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을 겁니다. 약재로써 그것들은 허브와 광물 같은 다른 물질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피조물과, 심지어 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을 보여줍니다. 모든 동물에 관한 주의 의로움과 정의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덧없는 세상에서 다양한 종류의 동물 중에 어떤 개체도 특별한 소유물이나 추가의 팔다리로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과 차별받지 않습니다. 반대로 한 개체가 지닌 모든 물질과 생명력과 장기는 다른 개체에서도 발견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왠지 다르다면 그것은 어떤 예외의 결과이지 타고난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며 그런 일도 매우 드물지요.
자연의 정해진 과정에서 한 종의 개체들 사이엔 차이가 없습니다. 그 차이는 그들 구성의 다양한 배열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은 그 종의 구성요소가 지닌 성질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 종의 본성은 한 개체보다 다른 개체가 더 유리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최고의 몰약을 여러 자루 갖거나 금으로 수놓은 옷들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은 생존에 불필요한 것이 없다고 잘못된 일이거나 부당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도 그로 인해 자기 본성에 필수적인 추가의 것을 지배하지 못하며, 단지 실체가 없는 허상을 얻었을 뿐입니다.
자신의 생존에 불필요한 물건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도 필수적인 것은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 거두었더라』 이것은 언제나 모든 곳에서 원칙입니다. 우리가 설명한 것처럼 예외적인 경우에 주목하지 마세요. 이런 두 가지 방식에서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납니다.
주님이 어떻게 필요한 것을 적절한 양으로 주시고, 같은 종의 모든 개체를 완전히 평등하게 대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이 올바른 성찰에 따라 현자의 지도자는 「주님의 모든 길은 정의롭다」라고 말합니다. 다윗도 같은 말을 합니다. 「주님의 모든 길은 자비와 진리로다」
그는 또 분명히 말합니다. 「주님은 모든 것에 선대하시며 모든 피조물에 긍휼을 베푸시도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신 위대하고 완전한 선의 행위입니다. 동물에게 제어 기관을 주신 것은 동물에 대한 그분의 자비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