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 열정이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순리를 따르게 하는 것은 이성의 실용적 작용입니다. 나약하기에 강함을 원할 때, 두려움에 주저할 때, 그 동력은 굴복하거나 좋은 것을 단념합니다. 이성은 이를 자극하여 불을 지핍니다. 또 한편으로 너무 빠르고 무질서하게 가면 이성은 열정을 억누르고 견제합니다. 따라서 감정의 동요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영혼의 윤리적 미덕의 불합리한 부분에서 지나침과 부족함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에서 나옵니다. 미덕이 그 균형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식과 분별력에는 비이성적인 요소가 필요하지 않으며, 영혼의 순수하고 감정을 초월한 곳에 있기에 우리에게 가장 신성하고 행복한 이해의 과실을 얻게 하는 것은 온전한 원만함과 이성의 힘입니다. 하지만 미덕은 우리 육신 때문에 필요한 것으로, 영혼의 비합리적인 부분을 파괴하거나 버리지 않고 명령하고 규제하면서 실용적으로 만드는 도구인 열정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힘과 질적인 면은 완벽하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지나침과 부족함을 바로잡는 도구가 됩니다.
[…] 미덕은 흔히 음악에서 화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음악에서 음계의 최고음과 최저음의 중간 음표는 한쪽이 튀거나 반대쪽이 가라앉지 않도록 완벽하게 조율합니다. 그러니 미덕이란 영혼의 비이성적 부분에서 움직임과 힘이 되어 태만함과 혹사, 즉 흔히 말하는 욕구의 과잉과 결핍에서 각각의 열정을 줄여 균형과 공평한 상태로 만듭니다.”
“[…] 절제는 이성이 통제하는 상태이며 열정을 관리하고 […] 욕망을 조절합니다. 반면에 금욕은 이성이 이끌지 않으며 갈등과 동요로 가득한 상태입니다. […] 그래서 금욕을 완전한 미덕이 아니라 미덕보다 못한 것으로 여깁니다. 더 나쁜 것과 더 좋은 것의 조화에서 균형은 생기지 않으며 열정의 과잉을 줄이거나, 욕구를 다스리거나 이성에 일치하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모두 고통과 문제만을 안겨주며, 힘에 의한 제약을 받습니다. […]”
“[…] 이성은 격렬하고 분노하며 미친 듯한 욕망의 움직임을 잠재워서, 본성에 필요한 공감하며 순종하고 우호적이며 협력을 실천하는 목표를 이루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