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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턴(채식인) 신부의 선에 대한 단상, 2부 중 2부

2020-02-25
진행 언어: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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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켄터키 주의 토머스 머턴 센터와 국제 토머스 머턴 협회와 다른 단체에서 이 현명한 신부의 삶과 활동들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토머스 머턴의 저서 『동양의 사상들』에서 선의 이야기를 계속 보내드립니다.

선은 특정한 형태나 특정한 체계에 의해 조직되지 않은 의식으로 범문화적, 범종교적이며 변형된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공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선은 이런저런 종교나 비종교 체계를 통해 빛날 수 있는데 마치 빛이 파란색, 초록색, 붉은색, 노랑색 유리를 통해 빛나는 것과 같지요. 선에 어떤 취향이 있다면 단순하고 색이 없는 그냥 유리입니다.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을 발견하는 선의 깨달음은 부처를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부처이며 부처는 절 안에 있는 예상한 형상들이 아니며 더 이상 어떤 형상이 없으므로, 그 결과로 볼 것이 없으며 보는 사람도 없고 상상할 형상조차 없는 공입니다. 센후이가 말하기를 「참으로 보는 것은 보지 않을 때이다」 이것의 뜻은 선이 모든 구조와 형태의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종 스님들의 특정한 현상을 이용해 -선 예술가들의 그림과 시와 짧고 생생한 말들- 선에 다가가도록 도움을 얻습니다. 선의 영향을 받은 중국과 일본 예술의 독특한 특성은 최소의 형태를 사용해 말할 수 없는 걸 추측하게 하고 형상 없음을 일깨우도록 합니다. 선의 그림은 우리가 무엇이 아닌지 알리기에 충분하며 그럼에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선의 서체에는 독특한 유연함과 활력과 자유분방함이 있고, 예쁨과 형식적 스타일을 무시한 것으로, 추상적이고 지적인 느낌 안에서 막연하지 않은 일종의 자유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최소의 형태를 이용하기에 자유롭습니다. 선 의식은 거울에 비교됩니다. 현대의 선 작가들이 말합니다. 「거울은 완벽하게 에고도 없고 마음도 없다. 꽃이 오면 꽃을 보여주고 새가 오면 새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대상은 아름답게, 흉한 대상은 흉하게 보여준다. 만물을 그대로 드러낸다. 거울의 속성에는 분별심이나 자의식이 없다. 만일 어떤 것이 오면 거울은 비춘다. 그것이 사라지면 거울에서 사라진다. 뒤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집착 없음과 마음 없음 같은 거울의 참으로 자유로운 작용은 부처의 순수하고 명쾌한 지혜에 비유된다. (좌선 게송에 대해 1967년 젠케이 시바야마, 교토)」 즉 선 의식은 사회적, 문화적 기준의 용어로 보이는 것을 구별하거나 분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상한 구조에 사물을 인위적으로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비록 자신의 취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취향의 원칙에 따라 판단하지 않습니다. 만일 판단하거나 구별하는 듯이 보인다면 판단을 넘어 순수한 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판단은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오는 자에 대한 방어로 그 판단을 펼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 예수께서 말한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의 깊은 의미를 효과적으로 숙고할 수 있습니다. 그 도덕적 암시를 넘어 모두에게 친숙한 선의 차원이 복음의 이 말씀에 있습니다. 이 선의 차원을 이해할 때에만 그 도덕적인 의미가 완전히 명확해집니다. 불성의 개념은 선사들이 공안과 그 외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두드리면서 거기에 있어야 하지만 없는 그것을 힘들게 얻게 되는 비밀스러운 대상이 아닙니다.

「부처는 자신의 평상심이다」 문제는 당신이 분별하고, 판단하고, 특징짓고, 분류하거나 심지어 관조하는 것조차 순수한 거울 위에 다른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입니다. 마치 이것이 빛을 확대할 것을 확신하듯이 빛을 조직 속으로 투과시킵니다. 선을 공부하는 참된 길은 바깥 껍질을 뚫고 정의할 수 없는 알맹이를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말해온 실상을 내면에서 깨닫게 됩니다. 에크하르트의 말처럼 「껍질이 깨어져야 알맹이가 나옵니다. 그러니 알맹이를 원하면 껍질을 깨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본질을 발견하고 싶으면 그 상징을 파괴해야 하고 더 멀리 들어갈수록 그 정수에 더 가까워집니다. 만물을 그 자체에 모으는 신에게 도달하면 거기에 머물러야 합니다」

선의 체험이 어떻게 스승과 제자 사이에 나타나고 전해지는지는 그 전수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무엇이 표식인지 알지 못하면 표식의 이상한 방법에 우리는 완전히 당황하게 되고 시작할 때보다 더 어둠 속에 남겨집니다. 이제 선에서 전하는 것은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될 수도 있지만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수받는 자가 아직 가지지 못했고, 아직 알지 못한 어떤 것에 관한 소식을 알려주거나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선이 전하는 것은 깨우침이고, 어쩌면 이미 거기에 있지만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선은 선언이 아닌 깨달음이며, 계시가 아닌 자각이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낸 조물주에게서 온 소식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우리 존재의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자각입니다.

나중에 존재의 문제에서 초자연적 선언과 형이상학적 직감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볼 것입니다. 다른 이를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잘 보완할 수 있고, 이러한 이유로 선은 기독교의 신앙, 사실은 기독교 신비주의와 완전히 공존합니다. (만일 선을 순수한 상태에서 형이상학적 직관으로 이해한다면) 만일 이것이 사실이면 선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선사들이 완전히 논리적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국의 위대한 선사 중의 한 분인 혜능조사(7세기)는 제자로부터 중요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가 5조의 영적인 후계자입니까? (즉 지금은 누가 조사입니까?)」 혜능이 답하길 「불법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 스님은 그를 압박하며 「그러면 당신이 계승자인가요?」 혜능이 말하기를 「아니다」 그 스님이 왜 아닌지 묻자 「나는 불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혜능이 조사의 역할, 즉 가장 순수한 선의 가르침, 의발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그는 자기 불성의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깨닫지 못한 이에게 그가 이 깨달음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정통의 가르침이라 선언했다면 그는 다른 것을 가르쳤을 것이며, 그것은 깨달음에 대한 교리일 것입니다.

그는 선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전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다른 이가 선으로 가도록 일깨우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가르침의 흔적을 전했겠지요. 선은 이런 종류의 일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선의 참 목적과 양립할 수 없지요. 이는 깊은 존재론적 깨달음, 즉 깨달은 존재의 바탕에 지혜, 직관(반야)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반야의 순수한 의식이 반야를 이해하는 의식이라면 그것은 순수하지도 직접적이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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