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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사이 / 능엄경

능엄경: 색음마와 수음마의 양상, 9부 중 6부 (2018년 12월 26일)

2019-07-10
Lecture Language:English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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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처가 계속합니다. 『아난아, 저 선남자가 그 가운데 있어서 광명이 비침을 보고』 이 모든 무력함과 불명확하고 거짓된 이 맑음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깨달은 후에 그는 밝은 빛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열려서 안으로 억제함이 분수에 지나치면 홀연히 그 곳에서 한없이 슬픈 마음이 생겨나서 모기나 쇠파리를 보고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여기게 되어 연민하는 마음이 생겨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일부도 그냥 까닭 없이 울죠. 이유도 모르고 많이 울죠. 명상 후나 때로 명상 중에 그냥 눈물을 흘려요. 여러분 마음, 내면이 항상 모든 중생에게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자비로운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자비심이 전혀 없는 마야와는 정반대죠. 마야는 자비심을 끊고 잘라내야 일을 할 수 있죠. 우리가 항상 말하길 또 다른 예가 있어요. 기억하죠. 부처에겐 늘 평생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성불한 후에도요. 그는 항상 부처를 괴롭히고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하지만 죽이진 못하고 부처의 발가락 하나를 잘랐고 늘 문제를 일으켰죠.

하지만 어떤 경전에서는 데바다타가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나와요.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부처가 늘 진보하고 향상될 수 있었다는 거죠.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가 부처를 해친 후에 부처의 눈을 뽑기까지 했어요. 질투나 그런 것 때문에요. 왕이 되고 싶어서 형제를 살해한 것이죠. 아니 죽인 건 아니고 눈을 뽑았죠. 그래서 부처는 아무것도 못했죠. 볼 수도 갈 수도 없었어요.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죠.

그런데 그는 돌아와 부처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 이야기에서는 데바다타가 그런 일을 저지른 후에 혼잣말로 속으로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좋아 잘했어 내 할 일을 했어』 여러 다른 이야기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부처의 최고 적인 데바다타는 부처에게 뭔가 잘못을 해놓고 늘 기뻐했다고 해요.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해냈다며 뿌듯해했죠. 그 일이 있은 후에 부처의 남은 업이 정리되거나 그 상황으로 인해 부처의 자비심이 더 커졌기 때문이죠.

부처는 그 형제를 증오하는 대신 그가 너무 무지해서 안타깝게 여겼어요. 예를 들면 그랬죠. 그래서 부처는 비록 두 눈, 육안은 잃었지만 영혼은 잃지 않았어요. 자비심을 잃진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에 마야를 탓하지만 그에게 고마워해야 해요. 그가 그처럼 모든 걸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가 밖에서 고통을 못 보겠죠. 그럼 여러분은 이 무상함에 이 무상한 삶을 깨닫지 못할 거예요. 혹은 자비심이나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겠죠. 거리에서 누군가가 추위에 떨며 굶주리면 연민을 느끼지 않나요? 여러분은 동정심이 생겨서 옷이라도 벗어주려 할 거예요. 아니면 집에 와서 음식을 가져다 주겠죠. 그렇죠? 여러분에게 좋은 거죠.

만일 마야가 모든 이를 잘 돌본다면 이미 천국이 됐을 텐데 내가 왜 여기 있겠어요? 여러분은 왜 나가서 자선활동을 하고요? 그러니 어쨌든 마야가 좋든 나쁘든 여러분에겐 좋은 거죠. 우리만 훌륭하면 돼요. 마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나쁘면 걱정해야죠. 마야가 나쁜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를 어쩌지 못한다 해도 그를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가 좋은지 안 좋은지 그것만 걱정하세요. 알겠죠? 그러니 감사해요. 사실이죠 안 그래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과 옆 사람이 좋든 나쁘든 사실 우리를 위한 거예요. 영어에도 이런 말이 있죠. 『지금의 널 위해 내가 있었고 앞으로의 널 위해 내가 있다』 그런 말이에요. 현명한 말일 거예요. 누군가 지혜를 터득해 이런 문구로 말해주는 거죠.

사실 우리, 너, 나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요. 좋거나 나쁜 방식으로 서로를 돕는 것이죠. 우리가 진화의 과정, 영적 진화의 과정에서 진보할 수 있도록요. 그러니 그런 자세로 모두를 보세요. 전에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죠. 그는 거리에서 술에 취해 있는 어떤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을 바꿔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죠. 그 주정뱅이 거지는 늘 그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에 앉아 있었어요. 그는 거기에 앉아서 그 남자에게 뭔가를 일깨워 주었죠. 그 남자는 그걸 인식하지 못했죠.

하지만 향상되었어요. 최소한 술 주정뱅이가 되진 않았어요. 왜냐면 그는 술을 많이 마셔서 집도 가족도 없이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추운 날 거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봤기 때문이죠. 내 말 알겠어요? 나쁜 본보기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알려주죠. 좋은 본보기는 따라 하게 만들고요. 그래서 모든 게 좋아요.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게 다 좋아요. 그저 선량해지세요. 그럼 모든 게 다 좋아요. 그럼 더 분명히 알게 되고 그런 상황들이 증오하고 불평하라고 있는 게 아님을 이해하게 되죠.

때로 내가 『이 소파 정말 싫어』라고 말해도 정말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건 그냥 이 세상에서 말하는 방식이죠. 그렇게 말해선 안 되죠. 그저 습관이에요. 여러분한테 배웠어요. 내가 태어났을 땐 그렇게 말 안 했어요. 그렇죠? 그런 뒤 우린 자라면서 모두 그런 식으로 말하니 그게 마음에 새겨져서 우리도 같은 식으로 말하게 되었죠. 그래도 지금부턴 긍정적으로 말해보세요. 긍정적인 말을 사용해요. 『아파 죽겠어』라고 하는 대신 『안 좋아』 라든지 『나아지겠지. 좋아질 거야』 라고 말하세요. 됐어요 계속합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명상하는 도중에나 하고 난 뒤에 울었어요. 여러분 중에도 많죠. 난 알아요. 그러니 묻지 마요. 어쩌면 어떤 마가 울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죠. 『이는 공부하는 중에 마음을 억제함이 지나친 탓이다』 마음을 너무 억눌러서 눈물로 터져 나온 거죠. 참을 수 없는 거죠. 마음은 온갖 환상을 만들죠.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진다』 문제도 없고 나쁠 게 없죠. 하지만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오래도록 깨달아 혼미하지 아니하면 얼마 후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울지 않고 활짝 웃을지도 몰라요. 알 수 없어요.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슬픔의 마가…』 이제 여러분은 첫 번째 마의 이름을 알아요. 앞으로 나올 마들이 더 있어요. 여러분이 어떤 경지에 있는지 그리고 거기서 성인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않는지 어떤 자각을 하는지에 달려있는 거죠. 이게 첫 번째 경지예요. 여러분이 슬퍼하며 울 때, 기억나는 모든 작은 모기와 개미들까지 안됐다고 느껴요. 중생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고 해서 꼭 슬픔 속에 빠져 있을 필요는 없어요. 안타깝게 여기지만 업장과 세상과 마야를 알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거죠. 우울감에 압도되지 마세요. 너무 우울하면 목숨이든 뭐든 끊고 싶을 거예요. 그건 안돼요, 안돼요.

슬프거나 중생에게 지나친 연민을 가지고 슬픔에 압도되면 안돼요. 슬퍼하되 떨어지진 마세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진 마세요. 그러니 자신을 조절하고 자신의 영적 진화 상태를 아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럼 슬픔의 마가 오지 않을 거예요.

내가 지금 설명하고 있죠. 아니면 부처도 말했어요. 『슬픔의 마가 그의 심장 깊숙이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곧 슬퍼하며 한없이 울 것이다』 어떤 중생을 보면 슬픔을 느낄 겁니다. 그 사람 안의 슬픔만 볼 테니까요. 그 사람이 슬플 때나 슬픈 상태일 때를 보고 그것을 기억할 겁니다. 어쨌든 그의 전 인생 인간적인 삶은 슬프죠. 그래서 누군가를 보면 가여워서 울고 또 울죠.

『올바른 삼매가 부족하니 분명 떨어지게 되리라』 주의하세요. 언제든 당신 마음이 안 좋게 혹은 바람직하지 않게 바뀐다고 생각되면 스승의 도움을 청하세요. 신을 찾고 보호자들을 부르세요. 자신의 감정상태나 거짓된 사고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아난아, 또 저 선정 가운데서 그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하여 수승한 모습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 감격함이 분수에 지나치면』 이건 또 다른 경지네요. 『갑자기 그 가운데서 한없는 용기가 생겨』 이제 아마도 많은 용기가 생길 겁니다. 갑자기 용기가 솟아나죠. 『마음이 대담하고 열렬해 모든 부처와 같아지려고 결심을 하고 삼아승지겁을 한 생각에 초월할 수 있다고 여길 터이니』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또 다른 경지입니다. 삼아승지겁을 초월한다는 건, 맙소사, 여러분은 그게 얼만큼의 세월인지 알지도 못하죠. 근데 한 생각으로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군요. 자신감, 용기가 지나치고 자존감이 너무 큰 거죠.

『이를 두고 「수행에서 뛰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지나치다」고 한다.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 오래도록 분명하게 깨달아서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리라』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요. 그냥 지나갈 겁니다.

『만일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미친 마가 마음 깊숙이 들어가서』 이건 슬픔의 마보다 더 안 좋아요. 『사람만 보면 자랑하면서 비길 데 없을 정도로 아만이 생겨나서 위로는 부처님도 보이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도 보이지 않을 터 올바른 삼매가 부족하니 분명 떨어지게 되리라』

오! 그러니 주의해요. 읽으면 읽을수록 부처와 함께하지 않으면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더 드네요. 모든 곳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보며 매우 맑고 힘이 있고 언변이 유창하지만 아무데도 못 가요. 이런 생태에선 마들이 와서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스럽죠. 왜냐하면 정말로 우리는 야심을 가져선 안되기 때문이에요. 나가서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부처가 되려는 게 아니죠. 부처가 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자비심 때문이죠. 모든 중생이 고통 속에 빠져 있는 걸 보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길 원하는 것이죠. 그것이 부처가 되려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나가서 설법을 하거나 많은 이들을 제자로 삼아 자신을 숭배하게 하고 많은 공양을 하게 하고 집 같은 걸 보시하게 하거나 유명 인사가 되거나 큰 인물이 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자신을 믿게 만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그럼 어떤 마가 와도, 아니 모든 마가 온다 해도 그건 모두 여러분 잘못이죠.

세상의 명성을 바라지 말아요 뭐 하러요?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내가 이미 말했듯이 유명해 지는 건 성가신 일이에요. 사람들이 문제를 주고 해를 끼치려 할 거예요. 사는 동안은 늘 도망 다녀야 하는 것과 같아요. 진실로 그와 같아요. 특히 정치 분야가 아니라면 경호원도 없고 아무것도 없죠. 그건 절대 부러워 하거나 갈망할 지위가 아니에요.

전부 내던져 버리세요. 자신의 진보만을 위해 명상하고 수행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건 뭐든 던져 버리세요. 늘 보호와 도움을 구해요. 그럼 에고가 어떤 식으로 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고 여러분의 자비심이 계속해서 자랄 것이며 여러분은 어딜 가든 영적 축복의 힘으로 사람들이 향상되도록 영향을 주고 여러분이 알든 모르든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훌륭하면 사람들이 축복 받습니다. 백단향처럼 향기를 풍길 거예요. 장미 한 송이는 향긋한 향기를 뿜어서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죠. 장미는 자신의 향기나 열매를 자랑하지 않죠. 태양도 세상에 혜택을 준다고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하죠 마찬가지죠.

우리 수행자들은 하나의 목적만 있어야 해요. 남들을 이롭게 하는 거죠. 작든 크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요. 그걸 모르는 게 나아요. 그럼 에고가 나와서 자만을 키우지 않겠죠. 내가 관음법문을 배우기 전에 몇몇 불교 승려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내게 경전 같은 걸 줬어요. 그리고 하루는 말했죠. 어떤 의식 같은 것, 그들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면 어떤 의식을 행해요. 과일과 향을 사서 부처님께 올리고 좋은 불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거예요. 네, 그런 것이죠.

그때 그들은 내가 아주 신실한 걸 보고 말했죠. 『향을 전부 다 피우겠어요』 몇 개나 됐나 모르겠어요. 향이 전부 30개나 50개쯤 됐겠죠. 그걸 전부 향로에 넣고 태웠어요. 그런 뒤 스님들이 내게 말했어요. 『소원이 있으면 속으로 부처님께 말하세요. 우리가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요. 우리에겐 말하진 말고요. 그냥 맘 속으로만 소원을 비세요. 향이 일부나 전부 구부러진다면 소원이 성취될 겁니다』 모든 향이 구부러졌어요. 떨어지지도 않았고요. 대개 향들은 아주 길잖아요. 그래서 일부는 재가 되어 떨어지게 마련이죠. 그런데 전혀 안 그랬어요.

그래서 나의 은사 스님들이 모두 놀랐죠. 『무슨 소원을 빈 거죠?』 내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준 적이 있죠. 난 가장 고통 받는 중생을 도울 수 있기를 원했어요.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나 존재들을요. 내가 알지 못한 채로요. 난 알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게 내 소원이었어요. 아직 20대였죠. 아직 관음법문을 수행하기도 전이었어요. 그러니 여러 생을 수행한다면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을 거예요. 다시 돌아와서도 똑같이 하겠죠. 이해하겠어요? 그저 남들을 돕고 싶어할 거예요.

그때는… 오랫동안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젠 말해도 될 것 같아요. 본보기가 되라고요.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이것뿐이에요. 내 소원은 정말 실현되었으니까요. 그래서 기쁘게 말하는데 여러분이 그런 소원을 빈다면 이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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