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살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이 육신으로는 더 오래 살 수 없어요. 다른 몸으로 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는 몸이 있어요. 수천 년을 버틸 수 있는 몸도 있습니다. 수백만 년을 버틸 수 있는 몸의 종류도 있어요. 영원히 살 수 있는 몸도 있는데 그것은 지혜체입니다. 지혜 법문을 사용해야 그걸 얻을 수 있어요. 우리가 의학적 방법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얻는 것처럼 지혜의 방법을 통해 지혜체를 얻습니다. 이 지혜체가 있으면 불이나 물 또는 재난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지요.
우리가 입문하지 않아도 타고난 지혜나 타고난 천상의 힘을 알지 못해도 지금 이 순간에 여전히 작은 신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신입니다. 이웃, 자녀, 친구, 친척 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마다 그 순간 우리는 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연민, 사랑, 자비, 지혜를 더 많이 나타낼수록 신과 더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신은 너무 제한적입니다. 한두 사람만 사랑하고 한 번에 소수의 사람만 도울 수 있습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신은 온 세상을 도울 수 있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입니다. 그것이 부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것이죠. 사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이름이 아닌 칭호입니다. 부처가 그분의 이름이 아니라 칭호인 것처럼요. 그것은 깨달은 존재, 전능한 힘을 나타냅니다. 이 힘을 얻으면 마릴린 그리스도, 조셉 그리스도, 스미스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였죠. 허나 우리는 이름이 다르니 다른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러니 석가모니 부처님, 석가모니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슷합니다. 단지 나라가 다르니- 다른 명칭으로 부릅니다. 깨달은 스승에 대한 히브리어 명칭이 있어요. 메시아라는 명칭이죠. 메시아란 명칭 아닌가요? 그런 것 같아요. 여기 유대인이 있으면, 더 알려주세요. 산스크리트어로는 깨달은 스승을 부처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그리고 지금 현대에는 구루라고 부르죠. 그런 명칭이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구루가 부처와 다른 점이 뭔가요? 진짜 구루는 부처님이죠. 부처는 구루를 뜻하고요. 구루는 『어둠의 제거자』 빛을 주는 사람이란 뜻이죠. 이런 분과 함께하면 무지의 어둠을 걷어내고 (내적 천상의) 빛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했죠, 『나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 속을 걷지 않으리라』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내가 세상에 사는 한』이라 말씀하셨죠. 그분은 후대 사람들이 다 그분을 오해하여 영원히 빛을 주시는 분으로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해야 하셨죠, 『내가 세상에 사는 한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분은 내가 영원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죠. 『내가 떠난 후 후세들을 집으로 데려갈 위로자를 보내겠다』 그러니 그분을 위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자신이 죽으면 다른 분이 오신다고 했어요. 누군가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성자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분이 과거 성자들의 환생이라는 뜻입니다.
맞지요? 읽어 봤나요? 그래요, 잘됐네요. 적어도 누군가는 나를 믿어주네요. 때론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금방 잊거나 그냥 무시해 버리지요. 그러니 다시 말하면 아주 이상한 내용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오래된 내용입니다. 내가 만든 내용이 아니죠. 마찬가지로 때로 내가 불교도에게 말할 때 내가 이상한 얘길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전에 그런 걸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에 있고 불경에도 있으며 불교 교리에도 있어요. 그러니 내가 기독교 성경에 대해 말할 때도 같아요. 기억을 못 하면 때론 이상하게 느낄 수 있어요.
또 누가 내게 불교 교리에 윤회 법칙이 있는지 묻는 것도 같은 경우입니다. 혹은 인과응보 즉 인과의 법칙을 의미하는 업의 법칙도 같아요. 그들은 기독교에는 그것이 없다고 해서 내가 『아뇨 기독교에 있어요』 했지요. 성경에 나오거든요, 『심은 대로 거두리라』 이게 인과응보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알려줘야 하겠지요- 성경은 여러 번 편집되고 검열되고 삭제되었어요. 대중에게는 수많은 내용이 허락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많은 사람이 예수님 생애에 대해 조사했고 그들은 또한 우리에게 대단히 놀랍고 유익한 많은 정보를 발견했어요.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예요,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채식주의자였어요. 그런데 현대 로마가톨릭 교회는 그걸 인정하지 않죠.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역사는 역사고요. 그건 바뀌지 않아요. 그저 사실이나 역사가 대부분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게 됐죠. 그러니 때로 누군가 그에 대해 말하면, 정말 이상한 내용처럼 보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인내심을 가지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광대한 정보를 알게 되죠. 그렇지 않나요? 때로는 여러분의 전문 분야에서 갑자기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예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오늘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내일은 정말 믿어야 할 것으로 증명돼요. 옛날에 갈릴레이와 같아요… 지구가 둥글다고 말한 자가 갈릴레이인가요? 맞나요? (갈릴레오요) 그래요! 그가 세상이 둥글다고 하니 교회가 가택 연금을 했지요. 그런 식이에요. 너무 서둘고 너무 급하고 비인간적이죠. 때로 독선적인 사람들이 무지 때문에 이런 종류의 재난을 일으키기도 해요. 수백 년이 지나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왜 그러나요? 돌이킬 수 없잖아요. 큰 재능을 그렇게 잃고 인류는 위대한 재능과 위대한 예언자를 잃었죠. 인간의 눈으로 본 게 아니죠.
갈릴레오는 인간의 눈이나 망원경으로 그걸 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으로 봤을까요? 지혜안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진리만을 보았어요. 그러니 진리를 말했어요. 그리고 그때 과학이 발달했다면 그걸 증명했겠지만, 그리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결국 좋은 사람에게 벌을 주었습니다. 그가 어떤 경지인지 얼마나 깨달은 건지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는 정말 아름답고 무해하며 순수한 인간인데 그들은 그를 쓸데없이 가둔 겁니다.
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내면의 지혜를 얻은 거죠. 시대에 너무나 앞섰기에 사람들은 견딜 수 없었어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은 모두가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알았어요. 그분을 해치려는 이들도 많았고 또 죽이려는 이나 헐뜯는 이들, 오명을 뒤집어씌우려는 이들도 많았어요. 물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많은 이가 숭배했지만, 그분을 해치고 죽이려고 온갖 음모를 꾸미는 이들도 많았지요.
교회는 예수님이 무고한 것을 알았지만, 그분은 사악한 이들과 맞설 권세가 없었어요. 마찬가지로 갈릴레오도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며 당시의 예언자였지만 너무 앞서 있었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의 사상이나 지혜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므로 과학이 언제나 최신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지혜를 따라야 합니다. 대부분 과학자는 머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평균적인 사람보다 머리를 더 많이 쓰죠. 그러니 많은 장치를 발견하고 발명해요. 우리의 편리를 위해 많은 걸 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도 태어날 때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지혜의 아주 작은 부분만 사용합니다. 이제 우리의 완전한 지혜를 쓰는 방법이 있고 너무 쉬워 모두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작고 몸무게가 30㎏이 조금 넘는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아주 크니 더 잘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미래를 위한 우리 희망입니다.
우리가 늘 물질과학에 의존할 수는 없어요. 또한 이런 영적 과학에 의존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를 이 세상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 존재에 기쁨과 의미를 주는데 내 생각엔 우리 대다수가 늘 인간의 존재 이유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백 년만 살게 했을까요? 그리고 우리를 죽게 했죠. 그건 시간 낭비처럼 보여요. 수백 년이나 수천 년을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더 많은 걸 이루겠지요.
네, 정말 그래요. 더 오래 살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이 육신으로는 더 오래 살 수 없어요. 다른 몸으로 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는 몸이 있어요. 수천 년을 버틸 수 있는 몸도 있습니다. 수백만 년을 버틸 수 있는 몸의 종류도 있어요. 영원히 살 수 있는 몸도 있는데 그것은 지혜체입니다. 지혜 법문을 사용해야 그걸 얻을 수 있어요. 우리가 의학적 방법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얻는 것처럼 지혜의 방법을 통해 지혜체를 얻습니다.
이 지혜체가 있으면 불이나 물 또는 재난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지요.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내 형제자매인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우리 지혜의 위대함과 우리 그리스도 능력의 위대함을 전할 방법이 없어요.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하며 내면의 천국이라 부르죠. 『잘 보라,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그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봐요, 『무엇이 천국이고 내면이 어디 있으며 매일 24시간 데리고 다니는 천국이 내게 무엇을 해주나요? 그것이 무엇을 해주나요? 내게 무슨 소용이 있죠? 내면의 천국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내가 매일 비참하고 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투쟁하며 온갖 질시와 분노와 안팎의 온갖 나쁜 악영향에 맞서야 하는데요? 그런데 당신이 내게 말하는 이 천국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래요, 나도 동의해요, 소용없지요.
단지 우리가 그것을 알고 소유하고 사용해야 그것이 유용해집니다. 아니라면 우리가 그것을 백 년, 천 년, 백만 년, 억만 년을 가지고 다닌들 여러분을 단지 하나의 인간, 벌레, 사자나 호랑이로 만들 뿐입니다. 그것이 뭐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