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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에네아데스: 플로티노스(채식인), 2부 중 2부

2022-03-12
진행 언어: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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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엔네아드, 제2편 덕에 대하여

1장

악은 여기에 있고‍ 「불가피한 법칙으로 이 세상에 떠도니」‍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영혼의 계획이기에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 벗어남은 무엇일까요?‍ 「신과 유사성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의롭고 거룩하게 되고, 지혜로 살며」 덕에‍ 기반한 본성 전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덕을 통해‍ 닮는 것은 덕을 지닌‍ 어떤 존재를 닮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떤 신성한‍ 존재와 닮아야 할까요?

사실 덕과 덕의 원천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물질적 집은 지성이 생각한 집과 같지 않지만,‍ 유사성은 있습니다. 물질적 집은 분배와 질서가 있지만 순수한 사상은 그런 요소들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분배, 질서, 대칭은‍ 사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영역의 덕인 질서와 분배와 조화를‍ 지고한 존재에서‍ 얻게 됩니다.

조화, 질서 또는 분배가 필요 없는 그곳의 존재는 덕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덕을 가져야 그들처럼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덕을 통해 닮는다는 원칙은 지고한 존재 안에‍ 덕이 있다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음이 쉽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형식적인 증명만이 아니라 납득해야 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제1엔네아드, 제2편 덕에 대하여

2장

먼저 우리에게 유사성을‍ 얻게 하는 좋은 품성을‍ 살펴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베낄 때는 덕이지만‍ 지고한 존재가 그것을‍ 가지면 모범 또는‍ 원형의 본성이 되며‍ 덕이 아닙니다. 그럼 집합적 또 개별적으로‍ 덕이란 정확히 무언가요?‍ 더 명확한 방법은 개별적인 것에서 시작하는데 모든 형상은‍ 일반적 이름이 있기에‍ 공통 요소가 쉽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공의 덕은 우리가‍ 여기서 살아가는 한‍ 우리 안에 있는‍ 질서와 아름다움의‍ 원칙입니다. 그것은 욕망과 전체 감각의 한계와 척도를 정하고‍ 잘못된 판단을 없앰으로써‍ 우리를 고상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이런 공공의 덕은 스스로 측정하고 명령하며 물질이 그들 형성에 작용하듯이 영혼에 대한 측정원칙으로 작용하고‍ 초월 세계를 지배하는 척도와 같으며, 지고한 존재가 가진 최고선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상적 형상에 참여하면 그곳의 무형 존재와 어느 정도 상응하는 유사성을 만들어 냅니다. 가까이 가면 그런 참여가 이루어집니다. 영혼은 몸보다 더 가깝기에 더 유사하며 더 완전하게 참여하고 신과 같은 존재로 보여‍ 영혼에서 온전한 신을 본다는 망상으로 우리가 속게 됩니다. 이것이 공공의 덕을 지닌 사람이 유사성을 얻는 방법입니다.

제1엔네아드, 제2편 덕에 대하여

3장

우리는 이제 더 숭고한 덕의 열매인 유사성의 다른 형태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을 논의하면서 공공의 덕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 것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가‍ 세울 더 높은 종류의‍ 성품을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톤에게 덕은 분명히 두 가지 별개의 순서가 있으며‍ 공공의 덕은 유사성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을 닮는 것은‍ 이 세상의 방식과 사물에서‍ 도피하는 것」이라 합니다.

훌륭한 시민권의 자질을 다룰 때 그는 단순한 용어인 덕을 사용하지 않고 시민권이란 말을 씁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모든 덕을 예외 없이‍ 정화라고 선언합니다. 영혼이 몸과 융합하여‍ 몸의 상태를‍ 공유하게 되고‍ 몸의 생각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좋을 것이고‍ 덕을 갖게 될 것입니다.

몸의 기분을 벗어 던지고‍ 그 자체의 행위, 즉 지성과‍ 지혜의 상태에 전념하면 육체의 격정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고 분별력의 덕을 얻어 육체를 떠날 것을 겁내지 않는 불굴의 정신의 덕을 알게 됩니다. 이성과 지성 원리를 유지한다면 그것이 정의입니다. 영혼의 그런 성향은‍ 지성이 되고 열정에서 벗어나기에 신을 닮았다고 하는 것이‍ 틀리지 않습니다.

신 역시 순수하며‍ 신성한 행위는 그런 유사성이고‍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덕도 신적 상태로 만들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신은 상태가 없고‍ 영혼에는 상태가 있습니다. 영혼의 지적 행위는‍ 신성과 같지 않습니다. 신 안에 있는 것들 중 영혼은 어떤 것은 자신의 방식대로 움켜쥐고 어떤 것은 놓아둡니다. 마찬가지로 덕은‍ 영혼의 것입니다. 그것은 지성 원리나 초월에 속하지‍ 않습니다.

제1엔네아드, 제2편 덕에 대하여‍

7장

영혼의 덕은 지성 원리의 본보기 중‍ 초월 세계에 존재하는 것과 순차적으로 일치합니다. 지고한 존재에서 지성은 지식과‍ 지혜로 구성됩니다. 자기 집중은 분별력이고‍ 합당한 행위는‍ 본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비물질성은 신 안에서 더럽혀지지 않으며 불굴의 정신과 같습니다. 영혼에서 지성 원리를 향한 눈길의 방향은 지혜와 신중함입니다. 영혼의 덕은 사상가와 사상이 동일한 지고한 존재에겐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덕도 유사한 관계입니다

정화라는 말이 순수한‍ 존재의 생산이라면 영혼의 정화는 모든 덕을 생산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부족하면 무엇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덕과 각자가 치러야 할 것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여러 필요에 따라 이것저것을 사용하는 걸 배웁니다. 그가 더 높은 원칙과 다른 기준에 도달하면‍ 다음엔 이것들이 그의‍ 행동을 정의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전 형태의‍ 구속은 이제 그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는 마지막 해방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그는 더는 공공의 덕이 요구하는 선한 사람의‍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그것을 밑에 두고 떠나‍ 대신에 다른 삶, 즉 신의 삶을 취합니다. 우리의 유사성이 바라볼 것은 선이 아니라‍ 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을 추구하면 형상의 형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상 너머로‍ 시선을 고정하고 지고한 존재의 모범을 닮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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