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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의 명상: 침묵, 고독과 지혜 - 토머스 머튼 신부(채식인), 2부 중 2부

2021-12-11
진행 언어:French (Français)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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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침묵과 고독으로 하느님과의 연결을 굳건하게 하도록 가르치십니다.

2부. 고독에 대한 사랑

1장

『고독을 사랑하고 찾는 것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끊임없는 이동을 뜻하진 않습니다. 사람은 외적인 환경이 어떻든 간에 갑자기 자신의 빼앗길 수 없는 고독을 깨닫고, 고독 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순간 고독이 됩니다.

그 순간부터 고독은 가능성이 아닌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의 고독은 실현하지 못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완전한 고독을 언제나 우리 앞에 놓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안달하면서 손에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외적 고독의 물질적 가능성을 이루려고 한다면 이미 가진 고독의 실체를 잃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독에서 불가결한 요소의 하나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과 직접 마주하는 데서 오는 불만족과 불확실성입니다.

그것은 가능성을 미친 듯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소유하고 있고 다른 의미에서는 소망의 대상인 가능성의 거대한 현실 앞에서 우리를 안정시키는 겸손한 묵인입니다.

오직 고독한 자가 죽어서 천국에 갈 때만이 그의 삶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이미 실현된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는 고독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가능성에 있고, 순수한 소망 속에 하느님만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2장

『주님, 제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에 길이 보이지 않고, 그것이 어디서 끝날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자신을 잘 모르며, 당신 뜻을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당신 뜻을 따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을 흡족하게 하려는 소망이 실제로 당신을 흡족하게 함을 믿고, 제가 하는 모든 일에 그런 소망이 있길 바랍니다. 그런 소망을 벗어난 어떤 것도 하지 않길 바라며, 제가 그렇게 한다면 설령 제가 그걸 모르더라도 당신이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실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제가 길을 잃고 죽음의 그림자 안에 있어도 언제나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저와 함께하시며 홀로 위험에 맞서도록 두지 않으시니 두렵지 않습니다』

3장

『우리 시대에는 모든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불안의 시대인데, 우리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안은 외적 힘이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나온 불안을 세상과 서로에게 강요합니다.

이 시대에 거룩함의 뜻은 의심할 여지없이 불안의 영역에서 불안이 없는 곳으로 가거나, 어쩌면 근심 가운데 근심이 없어지는 걸 하느님에게서 배우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막스 피카르트가 지적했듯이, 침묵 속에서 사는 것은 우리 안에 모순이 남아있지만 모순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고 우리 안의 모순이 조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침묵의 세계 66~67쪽)

모순은 인간의 영혼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침묵보다 분석을 더 좋아할 때, 그것은 지속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죠. 우리는 모든 모순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과 함께 살고, 모순을 뛰어넘고, 그곳을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외적이고 객관적 가치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침묵은 거룩함의 본질에 속하게 됩니다. 침묵하고 신뢰하여야 성도들의 힘이 생깁니다.

고독이 문제였을 때는 제겐 고독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자 저는 이미 고독을 가졌으며 처음부터 고독을 소유할 수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문제였습니다. 단지 주관적인 내면의 고독과 내면화하려는 노력의 결실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음을 결국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독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보다 더 큰 성찬식이 되어야 하며, 존재 자체만큼 위대하고, 그 깊은 평화 속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과 사물 사이에 말을 넣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조차 인간의 비언어 구역에 또 다른 비현실적 관념이 되어 더는 현실과 교감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침묵하는 고독한 삶은 사람이 그의 마음과 사물들 사이에 놓았던 연막을 제거합니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사물의 진면목을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했던 현실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공포나 수치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친절한 침묵의 교감을 두르며, 이 침묵은 사랑과 관련됩니다.

우리가 말로 분류하고 통제하며, 심지어 수용할 수 없기에 무시하려고 했던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침묵은 말이 더럽혔던 곳을 존중함으로써 실상을 알도록 가르칩니다.

우리가 주변의 현실과 충분히 오래 살면 우리의 존경은 진리의 어머니인 침묵으로부터 그것에 관한 몇 마디 좋은 말을 꺼내는 법을 배울 겁니다.

말은 침묵과 침묵 사이에, 사물의 침묵과 우리 존재의 침묵 사이에 있으며, 세상의 침묵과 신의 침묵 사이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침묵 속에서 진짜로 세상을 만나고 알면 말은 우리를 세상이나 다른 사람, 신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갈라놓지 않습니다. 실상을 담기 위해 더는 온전히 언어에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존재의 침묵에서 말씀의 고요하고 거대한 침묵으로 떠오릅니다. 그때 다시 침묵에 잠기고 말씀의 진리가 우리를 신의 침묵으로 짓누릅니다.

아니면 하느님이 파도 속의 보물처럼 바다에서 일어나시고 언어가 물러날 때, 그분의 광채가 우리 존재의 기슭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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