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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 오로빈도(채식인): 신적 생활 - 인간의 소망, 2부 중 2부

2020-12-19
진행 언어: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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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간의 열망

『우리는 물질 속에서 생명체의 진화와 정신의 진화를 말하지만, 진화란 말은 그 현상을 설명하지 않고 단지 현상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물질 요소에서 생명체가 생명 형태에서 정신이 진화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생명체가 이미 물질과 관련되며, 정신은 생명에 관련된다는 베다의 해결책을 수용하지 않는다면요.

본질적으로 물질은 베일에 싸인 생명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연속성의 더 나아간 단계에 대한 반대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정신 의식 자체가 단지 마음을 초월한 더 높은 형태의 베일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신, 빛, 축복, 자유, 불멸을 향한 참을 수 없는 인간의 충동은 그 자체가 자연이 단지 마음을 초월해 진화하려는 간절한 충동을 표현하듯 그 과정이 적절합니다. 특정한 물질 형태 안에 자연이 심어놓은 생명을 향한 충동이나, 특정한 생명 형태 안에 자연이 심어놓은 정신을 향한 충동처럼 이는 자연스럽고 진실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처럼, 충동은 앞으로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일련의 과정과 함께 서로 다른 그릇에 다소 불명확하게 존재합니다. 여기서처럼 그것은 점차 진화하고, 필요한 기관과 능력을 완전히 진화하게 할 예정입니다.

정신에 대한 충동은 금속과 식물의 생명에서 나온 더 민감한 반응부터 인간의 완전한 조직까지 다양하기에, 인간은 이와 같은 상승하는 연속성, 가장 중요한 더 높은 신적 생활을 준비합니다. 동물은 자연이 인간에서 만든 살아있는 실험실이라고 합니다.

인간 자신은 아마도 초인, 신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의 의지와 의식적으로 협력하는, 생각하고 살아있는 실험실일 것입니다. 혹은 차라리 신의 현신을 위해서가 아닐까요? 만약 진화가 자연에 의한 발전의 표현이라면, 또한 그것이 은밀하게 존재함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화의 주어진 단계에서 이것을 잠시 멈추게 할 수도 없고, 종교가 이를 비뚤어지고 주제넘은 것으로 비난할 권리도 없으며, 이성의 이름으로 초월하려는 어떤 의도나 노력을 병이나 환각으로 비난할 권리도 없습니다.

영이 물질 안에 얽혀 있고 보이는 자연이 비밀의 신이라는 것이 진리라면, 자신 안에서 신의 현시와, 내면과 외부에서 신을 깨닫는 것이 지상의 인간에게 가능한 가장 높고 가장 합당한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의 몸에서 신적 생활이란 영원한 역설과 영원한 진실, 불멸의 열망 또는 죽을 운명이란 틀 안에 사는 현실, 하나이자 보편적인 의식이면서 제한된 마음과 분리된 자아 안에 나타난 초월적이고 규정되지 않는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는 홀로 시간과 공간 및 우주의 창조를 가능하게 하여, 더 등급이 낮은 말로 인식 가능한 이 모든 더 높은 진리에서 인류의 끈질긴 본능이나 직감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그들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논리적 사고로는 흔히 풀리지 않는다고 선언된 질문들을 마침내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우주에서 그들의 물질적 존재의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문제들로 정신적인 활동을 제한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회피의 효과는 절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인류는 그것에 대한 더 격렬한 탐구 의욕을 갖거나, 즉각적인 해결책에 대한 더 격렬한 갈증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런 갈증으로 신비주의가 이득을 보게 되며, 회의론에 의해 의미를 상실했거나 파괴된 과거의 종교를 대체할 새 종교가 대두합니다. 그 회의론 자체도 본래 탐구를 위해서지만 충분하게 탐구하지 않기에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진리의 외적 작용이 아직 모호하기에, 애매한 미신이나 광적인 신앙으로 진리를 거부하거나 억누르려는 시도는 흔히 반계몽주의로 표현됩니다.

우주적 필요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고되며, 즉각적인 구체적 결과에 의해 정당화되기 어렵고, 그 운용의 통제가 더디기 때문에 결국 자연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자연의 비밀, 더 강한 의지에 대한 반항임이 밝혀져야 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더 좋고 합리적입니다.

맹목적인 본능, 모호한 직관과 무작위적인 열망의 영역을 거부하고 이성의 빛과 교육과 의식적이며 인도하는 자기 의지로 올라가는 겁니다.

직감을 비추는 더 높은 빛이 있거나, 지금은 인간 안에서 가로막혀 있거나 작용하지 않고, 혹은 베일 뒤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스스로 나타나는 진리나, 물질계 하늘에 가끔 나타난 북극광 같은 이런 열망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의식의 더 높은 다음 단계이며, 거기서 마음은 단지 외형이나 베일일 뿐이며, 그 빛의 찬란함을 통해 인류의 궁극적 안식처인 가장 높은 상태로 진보하는 자기 확장의 길이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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