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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비건이 되라, 질의응답,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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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으로 저희가‍ 얻을 수 있는‍ 영적 혜택들이‍ 무엇일까요? 영적 혜택이요?)‍ 아, 그래요. 말해 주지요. (예. 감사합니다)

이렇게 질문해 주셔서 기쁩니다. 당신이 영적인 이로움에 집중한다는 뜻이니까요. 대부분 사람은 단지‍ 건강이나, 다이어트 몸매만을 생각하며‍ 비건식을 보지요. 비건식의 영적인 측면은‍ 아주 명확합니다. –‍ 비폭력, 즉 『살생하지 말라』 신께서 우리에게 『살생하지 말라』 하신 건,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 모든 존재를 말씀하신 거죠. 신께서 모든 동물주민을‍ 우리 친구이자, 조력자로‍ 만들었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동물 주민을 우리에게 맡기셨지요?‍ 그들을 보살피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이 누군가를‍ 다스릴 때, 그들을 죽이고 잡아먹나요? 그러면 왕만 있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겠죠.

이제 여러분도 이해하지요. 신께서 그리 말씀하실 때, 우린 어떻게든 따라야 해요, 의구심을 가질 필요 없지요. 신은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누가 신을‍ 이해할까요? 신 외에는요. 그래서, 신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신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신처럼 되도록 초대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되도록요. 다른 존재는 아닙니다.

신을 명상한다는 것은 신을 숭배하는 뜻이 아니라, 신이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신과 하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예수님이 그리 말하셨죠?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도 아버지와 하나죠,‍ 우리도 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행한 것은, 너희는‍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셨죠.

신에 대해 아는 게‍ 없을 때 왜 신을‍ 숭배해야 하나요? 왜 그렇게 맹목적인가요?‍ 먼저 숭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마치 결혼하기 전‍ 어떤 여자와 결혼할지‍ 미리 알아야 하는 것처럼요. 요즘은 신식이죠. 더는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지 않아요. 그러니, 왜 맹목적으로 신을 숭배해야 하나요? 우리에겐 신께 당신을 알기 위해 나타나 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비건이‍ 되라고 하는 말씀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모든 과학적인 이유로, 비건이 돼야 합니다; 모든 건강상의 이유로, 비건이 돼야 하죠; 모든 경제적인 이유로도, 비건이 돼야 합니다. 모든 자비로운 이유로도, 비건이 돼야 합니다. 세상을 구한다는 슬로건과‍ 정신으로, 우리는‍ 비건이 돼야 합니다. 연구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만 비건으로 먹어도, 매년 6천만 명을 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모든 이유로도‍ – 비건이 되고, 영웅이 되세요. – 나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여러분이 이 법문을‍ 수행하지 않는다 해도, 부디 비건이 되세요. 여러분을 위하고‍ 세상을 위해서요.

다른 질문 있나요? (질문을 적어서 이쪽으로 주시면, 저희가 받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저는 재발하는 패턴과 개인의 발전이 궁금한데요, 질투나 분노 같은 게 일어나면, 당신은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하고‍ 놓아 버리는지요?)‍ 오. 어려운 일이죠. 나도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니, 다음에 답해 줄게요. 괜찮죠? (좋습니다)‍

네, 질투는 정상이고, 보통 일어나는 일이죠. 그저 우리가 이 감정에 지배되거나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거나, 잔인하게 만들거나, 적을 없앨 방법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괜찮아요. 질투는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경고이거나, 우리의‍ 사랑을 아직 제어하지‍ 못했다는 거죠. (네)‍ 우리 감정이 여전히‍ 아주 생생하고,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그러니, 행복해하세요. 죽으면, 그땐 질투도‍ 끝날 테니까요. 죽기 전에는 아니죠.

만약, 누가 꼬집어서‍ 고통을 느낄 때,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 마취 주사를 맞을‍ 필요는 없어요. 고통이란 걸 알고, 할 수 있다면, 고통의 원인을 멈추세요. 하지만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몸을‍ 죽이지 마세요. 그건 나빠요. 고통을 멈출 수 없고, 고통의 원인을 멈출 수‍ 없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몸이 아직 살아있고, 반응하는 걸 기뻐하세요. 의사가 반사 시험을 할 때, 망치로 무릎을 두드릴 겁니다. 무릎이 뛰면 좋은 거죠. 안 뛴다면 좋을까요?

그러니, 바다는 스스로 파도를 일으키지 않아요. 바다는 지구의 자전과 풍압으로 파도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바다가 저항한다면, 그건 더는 바다가 아니죠. 물이 없으면, 파도도 없지만 – 그건 죽은 바다죠. 바다에 파도가 일 때, 그건 여전히 바다입니다. 좋은 상태이고; 진짜 바다입니다. 그러니, 질투를 느낄 때, 그건 『좋은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질투를 즐기지 않지만,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고, 감정이 아주 예민하고, 매우 인간적이란 걸‍ 스스로 알 수 있어요. 그저 잘 제어하고‍ 대신에 상대방도 아마 당신처럼 질투하는 것을 알면서 상대를 제거하는 데 질투를 이용하지 마세요. 그 사람을 지지하고‍ 당신 대신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세요. 피하지‍ 못하면, 원인을 없애요.

(자신이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 자로서…)‍ 뭐라고 했죠? (자신이 결정한다고요) 네.‍ (…당연한 결과를요. 제 안에서, 내면의‍ 평화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다른 이가 그것을 성취하도록 돕나요? 당신은 누구를 진정 아끼고 또 자연적인 과정이 일어나길 원하는지요. 그 과정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당신은 내면의 평화에‍ 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어요, 그렇죠? (네)‍ 난 오늘 약간 천국에 있네요, 그러니 제발…‍

네, 좋아요. 그건 바람직한 소망이죠. (억지로 하지 않고…)‍ 억지로 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하세요. 누가 들으면, 말하세요. 듣지 않으면, 멈추세요. 가까이 있을 때 나누세요. 내가 초대받아 왔듯이요. 초대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타나지 않았죠. 여러분이 듣고 싶지 않아서‍ 걸어 나간다면, 여러분 멱살을 잡고 끌고 와서 『앉아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난 듣고자 하는 이에게‍ 말할 뿐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배가 고플 때, 먹는 것처럼요. 피곤하면, 잠을 자고요. 가능한 만큼 해요.

물론, 때론 상황이 항상 분명한 건 아니죠. 하지만 그저 맡긴다면; 신의 뜻이 합니다. 신께서 누구를 데려왔다면, 그것이 맞습니다.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다면, 업장이 없다는 뜻이죠.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내가 준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환불해 줄게요. 다시 물어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만족할 때까지‍ 항의할 수 있어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간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요?)‍ 네. 완전히 신성한 사람은‍ 완전한 인간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완전히 신성합니다. 지금 우리는 단지‍ 절반의 인간일 뿐입니다. 우린 망설이며 일합니다. 에고로 일합니다. 우리의 즐거움과 경험을 위해, 이 모든 걸‍ 안배하신 분이 신이라는 걸 믿지 않죠. 우린 죄와 덕을 분리하죠. 우린 모든 것을 대단하게 여기고, 그에 따라 우리와 다른 이를 판단하며, 우리 스스로 신께서 하실 일을 제한함으로써‍ 고통받습니다.

신은 우리 안에 거하지만, 우리가 제한하죠. 신께서는 모든 것을 즐기며 역할을 맡아요. 하지만 우린 모르죠. 그저 말합니다. 『오, 그러면 안 돼요』‍ 우린 자신에게 『오, 나는 그러면 안 돼. 이러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해요.

『그런데 왜 비건인가요?』 여러분은 묻겠죠, 알아요. 비건, 단지 우리 안의 신이 그것을 원하며, [육식]은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우리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도 도둑질을 당하고 싶지 않지요, 예를 들면요. 우리가 다른 이에게‍ 그런 짓을 한다면, 그건 자신에게 맞서는 일이고, 우릴 고통스럽게 합니다. 자신에 맞서는 모든 것은 고통을 초래하죠. 가령 자신을 때릴 수 없고, 굶어서도 안 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 우리는‍ 살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그건 고통을 초래하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그런 식으로‍ 제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 생명이 모든‍ 생명으로 확장함을 뜻하죠. 우리의 삶은 이 몸에‍ 국한되지 않고 동물 주민과‍ 모든 중생의 삶으로‍ 확장되며, 그것은 우리를 더 크고 위대하며, 더 행복하고, 무한하게 만들죠.

(어둠의 힘이란 개념은 우리 마음속에 있나요?)‍ 네. 우린 희고 검은 걸 생각할 자유의지가 있죠. 사탄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원칙, 선함의 원칙, 참된 원칙에 반하여‍ 혁명을 일으킬 때, 어둠의 힘에 속합니다. 우리는 어둠의 힘, 부정적인 힘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힘 또한 괜찮습니다. 삶을 흥미롭게 해 주고, 삶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해주죠. 아니면, 우린 모두 천국에서 잠자고 있겠죠. 할 일이 없이요.

하지만 부정적인 힘에 지쳐‍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우린 그래야만 합니다. 부정적인 곳에서 항상‍ 놀 수는 없습니다. 때론 집에도 가야 해요. 그러니, 나의 메시지는 이젠 노는 데 지쳐서, 쉬고 싶고, 고향에 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내 말을 듣기 싫어하는‍ 이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본성을 사랑한다는 말이죠. 그걸 좋아하니, 그냥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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